2018. 7. 30. 00:03 영화감상문
[영화감상문 0010] 청년 마르크스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개봉한다기에, 난, 확인해보니 그 포스터의 생김새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그것과는 별개로 그냥 보기로 했다, 집에서 지하철로 1시간이 걸리는 영화관까지 가서. ‘I don’t like your girlfriend’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노래임에도 그게 위키미키의 노래이기 때문에 듣는 것과 비슷한 차원에서라고 할 수 있을 듯.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오랜만에 포스터의 수준과 영화의 수준이 딱 맞아떨어지는 영화를 본 것 같다는 거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엉성한 모습을 보인다. 대상에 대해 다루고자 하기는 하나 제대로 다루기는커녕 안 다루느니만도 못하게 다루는 느낌.
영화는 집중적으로 마르크스의 사상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사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그의 인간적인 삶의 과정을 조명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둘을 적절하게 배합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어느 장면에서는 그의 사상을 다루는 데에만 치우쳐 몇 분을 보내다가, 또 어느 장면에 다다라서는 그의 사적인 부부관계를 엄청나게 깊게 다루고, 그러다가는 또다시 급작스럽게 사회와 사상을 집중조명하는 식의 연속이다. 이랬다가 저랬다가를 극단적일 정도로 왔다 갔다 하니, 영화는 다소 산만하다는 인상마저도 준다. ‘청년’ 마르크스에 있어서도, 청년 ‘마르크스’에 있어서도 실패한 영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후반부도 다소 엉성하다. 영화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대화하는 모습만을 한참 보여주다가 그 둘이 결론을 내리는 것을 기점으로 하여 절정인 공산당 선언으로 넘어가는데, 이게 기점의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은 결국엔 이론일 뿐인 글만 쓰는 것을 넘어 직접적으로 노동자들의 혁명을 촉진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공산당 선언을 쓰기 시작하는데, 영화 속에 나타난 정보로만 보자면 이 둘이 왜 이러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게끔 되어있다. 이야기의 흐름으로만 보자면 그 어떠한 촉발제도 없는데 뜬금없이 둘이 갑자기 영화 끝날 때쯤 되니 불타오르는 인상을 준다는 말이다. 허술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제 그 시기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가졌던 고민들은 겉핥기 식으로조차도 다뤄지지 못한듯.
하다 하다 엔딩 크레딧 마저도 별로였다. 갑자기 분위기를 깨고 무슨 밝은 락 음악을 깔면서, 공산주의나 맑시즘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어보이는 여러 빈곤층의 모습이나 마르크스 이후의 사회혁명들을 보여주는데, 마르크스가 쏘아 올린 공이 후세에도 계속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걸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은 잘 알겠으나, 앞서 말했듯 연관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말 불필요한 사족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별로인 점이 많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 유령이 떠돌아다니는 바로 그 부분부터 해서는 심장이 빠르게 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첫 문장을 들을 때 전율이 이는 것은, 마치 무릎을 망치로 때리면 다리가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큼은 영화가 별로였다는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마르크스를 좋아하는 사람이 봤을 때만 어느 정도 봐줄 만한 영화인 듯싶었다. 좋은 인물을 다루는 영화라서 좀 더 엄격하게 보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는데, 영화로써는 정말 별로인 게 분명하다.
원제: Le jeune Karl Marx (영제: The Young Karl Marx)
국가: 프랑스, 벨기에, 독일
감독: 라울 펙 (Raoul Peck)
연도: 2017년
길이: 118분
관람경로: 영화관 (일반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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